땜빵 인생

땜빵 인생

 지금도 방영되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난 <장학퀴즈>를 즐겨 봤다. 한 눈에 봐도 공부 잘할 것 같은 형 누나 다섯 명이 문제를 맞히는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경연자들이 답을 못 맞힌 문제를 방청석에 응원 온 학생들에게 돌리는 대목이었다. 맞히면 교복 원단을 줬지 싶다(하필 교복 원단일까, 옷감이 귀한 시절이었지만). 틀리면 모두의 폭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이던 장면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정답을 안다며 손을 든 무리 중에서 차인태 아나운서에게 지목된 학생은 기념품을 챙기든 망신거리가 되었든 간에 일단 방송을 탈 기회는 잡은 셈이었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건데, 간혹 찾아온 행운이 처음부터 흡족한 조건을 갖춘 건 아니다. 운이라는 개념을 짜임새 있게 설명하고 분류할 재간이 내겐 없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 가야했던 보상을 내가 주워 담은 경우다. 잘 차려진 식사에 초대된 손님이 자리를 거부할 때 그 몫을 누구에게 대신 돌린다. 우리는 이걸 땜빵이라고 부른다. 이런 낱말은 나도 쓰기 싫다. 순화된 말이 어떤 게 있을까. 대체 인력? 야구를 좋아한다면 대타? 하지만 땜빵만큼 콕 찌르는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렵다.

 자신이 땜빵 신세가 된 사실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미지근한 행운을 겪지 않고는 더 나은 단계로 올라설 수 없다. 이름난 예술가들의 생애사를 짚어보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이런 스토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무대 주인공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생긴 빈자리를 무대 뒤에 선 단역이 얼떨결에 맡아서 스타가 된 사건, 뭐 그런 거 말이다. 제도와 조직이란 게 애당초 완성된 기능과 구조를 그려두고 굴러가는 법인데, 특히 사람을 뽑고 가리는 인사 문제에서 처음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법은 좀처럼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맡아서 하고 있지만, 심사장에서 예컨대 “아, 윤규홍씨는 우리 일에 딱 맞는 사람 같네요, 여러분 일단 이 사람은 뽑아놓고 다음 후보를 생각해봅시다!”란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브라켓> 지면에 새로 연재를 맡게 된 사정도 그럴 것 같지만, 정세용 편집장이 이야기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미술과 같은 시각 예술도 땜빵 문제는 늘 벌어진다. 미술은 공연 예술이나 출판업과 달리, 팀을 이뤄 결과를 만들어내는 절차가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 일은 기획자, 큐레이터와 작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단체전에서 기획자는 작가들을 모은다고 치자. 이 일은 하나의 좋은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 적합한 작가들을 뽑는 거지, 제일 탁월한 능력자를 순위 매겨 잘라내는 게 아니다.

 내 전공이 그런 탓이라, 제법 사실에 근거한 조사를 벌여봤다. 자기가 땜빵이라도 라인업에 끼일 확률은 10에서 15% 정도다. 이게 어떻게 산출된 수치인가 하면, 예를 들어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사표 내는 직원의 숫자, 새 차나 신혼여행 상품을 예약해놓고 펑크 내는 비율, 개인교습과 학원 과외에서 하루 이틀 만에 포기하는 수강생들의 수가 다 비슷했다. 통계는 놀랍다. 물론 이게 나머지에게 곧장 행운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큰 이벤트에 초대받거나 캐스팅되는 예술인들의 사례도 그와 같은 조직 행동 법칙에 지배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별 수 있나, 언제 누가 어디서라도 갑자기 나를 원하면 언제라도 뛰어갈 준비를 해두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손끝 숙련도를 올리고, 머릿속 개념을 다듬고, 작업량을 불려가는 게 험한 예술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