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크는 100가지 방법

예술가가 크는 100가지 방법

 10년도 훌쩍 되었을 거다. <월간미술>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다룬 적이 있는데, 서재에 꽂혀있는 잡지를 찾아보질 못해서 정확한 제목은 모르겠다. 미술인이 되는 100가지 방법같은 타이틀이 붙은 글이었다. 말하자면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되는지 하나씩 따져놓은 기획이었다. 여기엔 예컨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전시회를 치르고, 작품을 사서 모으는 일처럼 상식적인 이야기부터 전문적이거나 기발한 일까지 번호가 붙어 소개되었다.

 잡지사 에디터들이라면 번씩은 붙여봤을 “○○하는 ○○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시초는 사이먼이 불렀던연인과 헤어지는 50가지 방법(50 Ways To Leave Your Lover)"일거다. 미국 동부 포크음악이 왕왕 그렇듯 노래는 독백 투에 냉소적인 이야기가 깔려 있다. 시니컬함과 자기성찰성이 버무려진 예술은 장르를 불문하고 취향에 맞아떨어진다. 그렇긴 한데, 세상만사를 가지 칸에 끼워 정리할 있나. 우리는 그런 농담 속에서 진리를 찾는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을 생각해보자. 산길이란 대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밟아가며 자연히 생긴 흔적이다. 미술계에서 살아남든, 아니면 애인과 헤어지든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의 경험은 무시 한다.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길들 가운데 가장길고도 굽이치는 (The long and winding road) 아마도 유명 작가로 커가는 단계다. 지나고 뒤돌아보면 길은 장엄한 왕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정은 그렇지 못하다. 작가들은 자기 또래 아니라 선후배, 스승제자들과 희소자원을 두고 겨뤄야 된다. 유명세나 , 상과 같은 희소자원은 예술가가 천재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끝없는 노력을 하더라도 곧장 손에 있는 아니다. 번잡한 세상을 걸음 옆에서 관찰하는 예술가들에게 이런 상황은 곤혹스럽다. 이제는 득도하고 하산한다고 작가가 성공을 보장받을 없는 지경이 됐다. 옛날에는 산중수련, 최근에는 외국 유학, 이런 갖가지 격리 말이다.

 그래서 흔한 대신 우회로를 택한 작가들을 보게 된다. 이런 일이 있다. 어떤 기자가 내게 A라는 미술가에 관해서 물어보는데,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기자는 윤규홍이 어떻게 유명한 작가를 모를 수가 있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런 경우는 연구 논문에도 들어가는 흥미로운 사회현상이다. 가령 미술계 주류에 끼지는 못하는데 다른 장르나 사회 제도권에서는 유명 작가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각각의 장르에는 많은 작가들이 있고, 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분야에 있는 사람 전부를 리는 없다. 이쪽저쪽이 마주치는 결절점(node) 용하게 공략하는 작가(아니면 작가를 꿈꾸는 일반인)들이 생긴다. 이들은 목표로 하는 중심부 외곽부터 인맥을 쌓고 주류가 자신을 호출하길 기다린다. 하지만 예술 체계는 겉보기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술 담론을 조작하며 결탁한 주류 평단 예술 시장은 그들이 끼어드는 막아선다.

 내가 이걸 옳다 나쁘다 따질 처지는 된다. 다만 이렇게 우회로를 택한 작가들이 나타나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여기에 기존의 경쟁 체제나 지원 프로그램이 작가들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폐해는 없는지 의문을 가질 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건너뛰고 식으로 등단하면 유리한 점과 불리한 모두가 있겠지만, 처음엔 유리하다가 갈수록 보이지 않은 벽에 부딪힐 일이 많아진다. 누구나 예술을 즐기고 직접 창작에 뛰어드는 권리로서의 문화 민주주의, 사회 일반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체의 판단기준을 세워 예술의 자율성. 가지 가치는 부딪힌다. 안타깝지만, 앞으로 잦아질 것이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