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굳이 남이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도 난 바보 같은 짓일 자주 한다. 얼굴 화끈거릴 실수를 브라켓처럼 봄여름가을겨울 일 년에 네 번은 터트려야 내 직성이 풀리나보다. 몇 해 전에 일인데, 어느 연구소가 주최한 연말 행사에 한 해 동안 고생한 사람을 뽑아 감사장을 주는 자리에 내가 뽑혔다. 장소가 어떤 한식당이다. 의자 대신 양반다리를 해야 하는 상차림 앞에 있다가 내가 불려 나갈 차례가 되었다. 일어서는데 다리가 저려서 상을 받는 앞자리로 절뚝거리며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좌중에 있던 누가 속삭이듯 옆 사람에게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 생각을 입으로 뱉어내야 하는 모양이다. ‘아이고 저렇게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다리 절름발이였네, 쯧쯧’
 인사말 몇 마디 한다고 서있으니까 내 다리도 다 풀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나갈 때에는 다리 절던 사람이 들어올 때엔 사뿐사뿐 들어오는 걸 본 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옛날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반전을 보여주기 싫은 배려심에서, 나는 들어올 때도 다리를 절어야 했다, 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는 진짜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한 행동은 뭘까? 또 원래부터 나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미국 백악관에서 있었던 백남준의 해프닝은 무슨 의도라도 있었지, 난 고작 몇 명의 수군거림에 황당한 퍼포먼스를 시전한 거다.
 올바른 게 아니라면 언제라도 빨리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니까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인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항상 남이 바라보는 기대수준의 틀 속에서 맞추어진 사회라는 구성체니까 그렇다. 우리가 그 기대를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미술가 ○○씨는 평생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동료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왔는데, 이번 전시는 죄다 팔려고 작정을 했구나.'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종종 접한다. 내가 그 사람을 잘 모르거나 또는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닐지라도 난 좀 다르게 보고 싶다. 어쩌면 한 예술가의 바뀐 스타일이 원래 그가 좋아하던 게 아니었을까?
 출발 단계에서 경력이 얕은 예술가는 주목을 받기 위해 자기 작업에 동시대 예술담론의 요소를 끌어들인다. 여기에 그들 또한 시대 흐름 속에 벗어나지 못한 비평가, 교수, 기자들은 작가를 칭찬한다. 실속 없는 호사가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그들의 호평이 제도 속에서 의례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작가 본인도 처음엔 안다. 별 영향력도 없는 매체에 실린 기사를 스크랩해서 알리면 주변 사람들은 전부 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처음엔 자기도 알던 허구를 점점 현실 속에 중화시킨다. 대부분의 착각은 시간의 축적에 비례하는 법.
 가령 풋내기 작가에게 멘토가 좋은 뜻에서 몇 가지 언급을 한다. 평론가는 주례사처럼 실은 자기도 모르는 지식을 빌어 글 한 장을 완성한다. 그걸 보고 현장기획자는 보도자료를 꾸민다. 기자는 그 자료를 섞어치기해서 기사를 쓴다. 학예연구사는 그런 이력을 한 페이지에 모아서 자료집을 낸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을 같은 또래들 가운데 가장 대단한 인물로 착각한다. 뭐 작가만 그렇나, 평론가 기획자 기자 학예사 전부 그렇지(대표적인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윤규홍).
 리플리 증후군이 있다. 소설과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리플리의 거짓된 상상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꾸며둔 거짓말을 계속 하다가 그걸 진짜라고 스스로가 믿어버리게 되는 망조를 가리킨다. 공상 허언증 내지 작화증이라고 하는 이 증상에서 벗어나야 할 사람들이 예술계엔 수두룩하다. 사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내 안의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건 어떨까.
(윤규홍 Yoon Kew Hong, 예술사회학/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